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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1. <요재공>조호공휘홍묘갈명(朝湖公諱洪墓碣銘)
1. 문헌 목록 〉22. 22世 〉3. <요재공>방등재기(幇燈齋記)휘홍(諱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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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요재공>부윤공휘형묘표(府尹公諱泂墓表)
府尹公諱泂墓表 寶城郡蘆洞面擧石里龜嶝碧玉山負卯之雙墳故嘉義大夫漢城府左尹淳昌趙公諱泂内外之幽宅也公字允智號鳳山麗末玉川府院君忠獻公諱元吉爲上祖比安縣監司憲府執義玄洲公諱彭孫之十三世孫户曹參議行同知中樞府事諱廷美之八世孫諱泰德諱東輔贈資憲大夫工曹判書諱鎭圭是爲公曾祖祖考三世也妣貞夫人長興任氏鏡郁女生公于正廟二十三年己未序居三男中季子公以幼學不求名利安貧讀書敎誨後進鄉人咸稱頌德君子哲廟十一年庚申六月十三日卒享年六十二高宗二十六年己丑以文行贈嘉義大夫漢城府左尹配貞夫人金海金氏基在女丁巳生乙亥十月二十四日卒壽七十九墓祔右生三男三女男長贈戶曹參判同知義禁府事民植次京植聖植女嫡海南尹益權公州李武烈珍原監役朴重龍而其子朴南鉉以生進參判再行掃墳禮於公墓民植娶金海金洛禧女生二男一女子炳碩炳斗婿竹山安圭逸京植娶河東鄭允澤女無育再娶河東鄭氏女生二男一女子炳燁炳春婿咸陽朴時炫聖植娶開城李獻吉女生二男一女子熙一熙壽婿河東鄭在三公之後裔繁衍七世世居擧石里散居京鄉各地公之歿後一百五年曾孫平奎撰銘曰曾皇考妣牲石維新春享秋祀利其嗣人而未竪碣石今玆玄孫啓夏啓洙啓昌啓賢啓岩重燮啓良敬萬啓烈奉先代遺志略展追慕之誠以此竪碑用先人既作之文而略加補添爾 西紀一九九二年 壬申 四月 五日 玄孫 啓賢 謹識 啓昌 謹書 부윤공휘형묘표(府尹公諱泂墓表) 보성군 노동면 거석리(寶城郡 蘆洞面 擧石里) 거북등(龜嶝)에 벽옥산(碧玉山)을 향한 묘좌(卯坐)의 쌍분(雙墳)이 가의대부(嘉義大夫)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순창(淳昌) 조공(趙公) 휘(諱) 형(泂) 내외분의 유택(幽宅)이다. 공(公)의 자(字)는 윤지(允智)요, 호(號)는 봉산(鳳山)이신데 려말(麗末)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충헌공(忠獻公) 휘(諱) 원길(元吉)의 후손으로 비안현감(比安縣監)과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지내신 현주공(玄洲公) 휘(諱) 팽손(彭孫)의 십삼세손(十三世孫)이요. 증호조참의행동지중추부사(戶曹參議行同知中樞府事) 휘(諱) 정미(廷美)의 팔세손(八世孫)이시다. 증조(曾祖)는 휘(諱) 태덕(泰德) 할아버지(祖)는 휘(諱) 동보(東輔) 아버지(考)는 자헌대부(資憲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증직(贈職) 받으신 휘(諱) 진규(鎭圭)이시고 어머니(妣) 정부인(貞夫人)은 장흥인(長興人) 임경욱(任鏡郁)의 따님이시다. 공(公)은 서기일천칠백구십구년(西紀一七九九年) 정조(正祖) 이십삼년(二十三年) 기미(己未)년에 출생하셨다. 삼형제(三兄弟) 중 막내(季子)인데 위로 두분의 형은 휘(諱) 현(泫) 원(沅)이다. 공(公)은 유학(幼學)으로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고(名利不求) 가난을 탓하지 아니하고 독서를 즐기시며(安貧讀書) 마을 사람들을 깨우치고 가르치심에(鄉里敎誨) 사람들이 군자(君子)라 하였다. 일천팔백육십년(一八六○年) 철종(哲宗) 십일년(十一年) 경신(庚申) 유월십삼일(六月十三日) 돌아가시니 육십이세(六十二歲)이시다. 공(公)은 문행(文行)으로 일천팔백팔십구년(一八八九年) 고종(高宗) 이십육년(二十六年) 기축(己丑)에 가의대부(嘉義大夫)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증직(贈職) 받으셨다. 배위(配位) 정부인(貞夫人)은 김해인(金海人) 김기재(金基在)의 따님으로 일천칠백구십칠년(一七九七年) 정사(丁巳)년에 낳으시고 일천팔백칠십오년(一八七五年) 을해(乙亥)년 시월이십사일(十月二十四日) 칠십구세(七十九歲)로 돌아가셨다. 묘(墓)는 공(公)의묘 오른편에 모셨다. 삼남삼녀(三男三女)를 두셨는데 장남 휘(諱) 민식(民植)은 호조참판동지의금부사(户曹參判同知義禁府事)를 증직(贈職) 받았고 차남은 휘(諱) 경식(京植) 막내(季子)는 휘(諱) 성식(聖植)이고 딸(女)은 해남인(海南人) 윤익권(尹益權) 공주인(公州人) 이무열(李武烈) 진원인(珍原人) 감역(監役) 박중용(朴重龍)에 시집갔다. 큰아들 민식(民植)은 김해인(金海人) 김낙희(金洛禧)의 딸에 장가들어 이남일녀(二男一女)를 낳으니 아들이 휘(諱) 병석(炳碩) 병두(炳斗)이고 사위는 죽산인(竹山人) 안규일(安圭逸)이다. 둘째아들 경식(京植)은 하동인(河東人) 정윤택(鄭允澤)의 딸에 장가들었으나 아이를 낳지 못해 같은 정씨(鄭氏) 집안에 장가 가서 이남일녀(二男一女)를 두니 아들이 휘(諱) 병엽(炳燁) 병춘(炳春)이고 사위는 함양인(咸陽人) 박시현(朴時炫)이며 막내 아들 성식(聖植)은 개성인(開城人) 이헌길(李獻吉)의 딸에 장가들어 이남일녀(二男一女)를 낳으니 아들이 휘(諱) 희일(熙一) 희수(熙壽)이고 사위는 하동인(河東人) 정재삼(鄭在三)이다. 외손자(外孫子) 진원인(珍原人) 박남현(朴南鉉)이 생원진사(生員進士)하여 참판(參判)이 되었고 공(公)의 묘(墓)에 소분(掃墳)의 례(禮)를 두차례(二回)나 올렸다. 오늘날 공(公)의 후손은 칠세손(七世孫)에 이르고 거석리(擧石里)에 세거(世居)하고 경향(京鄉)에 흩어져 살고 있다. 공(公)이 돌아가신지 일백오년(一○五年)이 되는 갑진(甲辰)년에 증손(曾孫) 평규(平奎)가 묘표(墓表:碑文)을 지여(撰)두고 상석(牲石)에 명(銘)하기를 「증조부모님의 상석을 새롭게 하고 봄 가을로 제사를 받드니 그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라」 (曾皇考妣牲石維新春亨秋祀利其嗣人)하였는데 오늘에 공의 현손(玄孫) 계하(啓夏) 계수(啓洙) 계창(啓昌) 계현(啓賢) 계암(啓岩) 중섭(重燮) 계량(啓良) 경만(敬萬) 계열(啓烈)등이 선대의 유지(先代遺志)를 받들고 추모의 정성(追慕之誠)으로 묘비(墓碑)를 세우면서 선대(先代)에서 지어놓으신 비문에 약간 보태고 다듬어 세웠다. 서기일천구백구십이년(一九九二年) 임신(壬申) 사월(四月) 오일(五日) 현손(玄孫) 계현(啓賢) 삼가 짓고(謹識) 계창(啓昌) 삼가 쓰다(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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